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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룩 백
감독: 요시야마 키요타카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
개봉: 2024년 6월 28일
<룩 백>으로 보는 예술적 서사와 자의식
들어가며:비극의 현장에서 창작의 의미를 묻다
2019년 7월 18일.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서 “죽어라!"라는 외침과 함께 거 센 불길이 솟구쳤다. 목재로 된 건물 내부와 스프링클러의 부재로 인해 스튜디오는 빠르게 전 소되었고, 이 화재로 33명의 애니메이터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업계는 물론 세계 각지의 애니 메이션 팬들에게도 큰 상처와 슬픔을 남겼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당시 《체인소 맨》을 연재하고 있던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에게 도 상당한 충격을 안겼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단편집 <17-21>에서 <룩 백>의 집필 동기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며, 그가 예술가로서 느꼈던 무력감과 비극 속에서 창 작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17살에 저는 야마가타의 미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였기 때문 에, 다들 이대로 그림이나 그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었을 거예요. 그림을 그려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이시노마키로 피해 복구 자원봉사를 갔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는 저와 같은 생각일 미대생과 체육 대학 학생들이 잔뜩 있었어요. 이시노마키에 도착해서 주택 한 구역의 도랑을 가득 메운 흙을 제거하는 작업 을 했습니다. 흙을 자루에 담아 트럭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루 내내 했지만, 도랑의 흙을 전부 퍼내지는 못했어요. 30명 정도가 온종일 달라붙어서 했는데도 해내지 못한 것에 무력감을 느꼈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다들 시무룩했죠. 함께 작업했던 체육 대학 학생이 "저희가 온 의미가 없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는 그 후에 딱 한 번 더 다녀왔지만, 그걸 끝으로 더는 가지 않게 됐어요. 유화를 그리느라 돈이 들어서, 비용 마련을 위해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7살 때부터 쭉 그 무력감 같은 것이 절 떠나질 않아요. 또한 몇 번인가 슬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최근에 슬슬 이 감정을 발산하고자 <룩 백>이라는 만화를 그렸습니다.”1)
여러 명이 힘을 모아 재해 복구에 나섰지만,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던 경험과,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후지모토는 창작자이자 예술가로서 느낀 무력감과 예술적 자아에 대한 의문을 되새기며 자신의 감정을 작품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이 무력감을 <룩 백>이라는 작품을 통해 고백했고, 이 작품은 예술과 삶의 비극적 양면성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후지모토의 <룩 백>은 이후 오시야마 키요카타 감독에 의해 러닝타임 58분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오시야마는 원작이 담고 있는 서사적 정서를 고스란히 살려내는 동시에 영 화적 미학과 시각적 몰입을 통해 <룩 백>의 메시지와 감수성을 풍부하게 확장했다. 내러티브 의 층위는 더 복합적으로 되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시각 매체의 특성 덕에 작품의 예술적 자의식은 더욱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이 평론은 <룩 백>이 현대 애니메이션의 서사적 변화 속에서 예술적 자의식을 어떻 게 드러내고 있는지, 특히 21세기 메타 애니메이션으로서 <룩 백>이 내포하는 철학적 의미와 이를 통해 구현된 예술적 자아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메타 애니메이션의 현대적 구현: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리다
오시야마가 다룬 <룩 백>은 후지모토의 원작 만화의 이야기와 화풍을 충실하게 답습 하고 있으며, 통상의 의미에서 만화의 어댑테이션으로서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번에 애니메이 션화한 <룩 백>을 보았을 때, 다시 한 번 눈에 띄는 것은, 본작이 나타내는 애니메이션 표현 으로서의 드문 현대성이었다.
예를 들어, 본작의 이야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후지노와 쿄모토가 그리는 만화 제작 이 주축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는 자기 방에서 책상에 앉아 일심분란하게 그 림을 그리고 있는 후지노의 등이 등장한 후, 스크린에는 그녀가 그린 4컷 만화, 어떻게 보아 도 초등학생이 그린 듯한 터치의 만화가 확대되어 애니메이션화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오시야마 감독은 "그린 손의 기분이 그대로 화면에 담기기를 기대하며"라는 그의 말처럼, 원작의 그림 감각을 최대한 살리며 관객이 창작 행위의 물성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연출했다. 이러한 연출은 21세기 디지털 애니메이션 환경에서 보기 드문 접근 방식으로, 오시야마는 아날로그적 느낌을 강조해 창작과정에의 몰입을 돕고 있다. 이는 인물들이 느 끼는 무력감과 성취감, 혼란과 희열 등을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하며 창작의 본질에 대한 감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애니메이션 <룩 백>은 작품 내에서 캐릭터들이 그리는 만화와 작품 속 세계의 표현이 이중으로 겹쳐지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그리는 “그림=애니메이션”, 즉 일종의 “메타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흥미로운 특성을 자연스럽게 얻게 되었다. 메타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창작을 주제로 삼기보다는 창작의 의미와 매체적 특성을 반영하여 스스로를 성찰하는 특성을 지닌다. <룩 백>은 이러한 메타적 접근을 통해 단순한 서사를 넘어, 창작자가 겪는 감정과 예술적 사유를 담아내며,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다.
게다가 이것은, 실사 영화의 분야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부터 '영화나 무대를 만드는 것을 그리는 영화' (일종의 메타 영화)가 주목되는 것과도 공통되지만, 이상의 '메타 애니메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의 배경에는, 역시 디지털화를 시작해, 보다 최근에는 로토스코프나 모션 캡쳐, 생성 AI까지, 21세기에 들어 애니메이션의 만드는 방법이 크게 변화해가는 가운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 그 자체를 다시 묻는 시대의 사조가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룩 백>또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애니메이션의 서사적 변화: '나에서 우리로’
영화 프로듀서인 도이 노부아키는 그의 저서 < 21世紀のアニメーションがわかる本 >에 서 21세기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에서 우리로'의 전환을 들었다.
디즈니의 작품부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과 같이 20세기에 만들어졌던 애니메이션 들은, 뚜렷한 정체성이나 '세계는 이렇게 있어야 한다.'라는 높은 이상을 내거는 단독의 ‘나’의 표현, 다시 말해 '나'와 '세계'라는 독립된 서사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그런 확고한 ‘나’의 표현이 변질되어 왔다고 도이는 말한다.
현대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나'는 비슷한 다른 여러 '나'와 경계선을 잃고 융합하여 유동적으로 일체화한다. 거기에서는, '나'가 대치해야 할 '세계'='타자'도 모호하게 '나'안에 녹 아들어, 또 단독의 '나'와 대치하는 '세계'의 유일성, 불가역성 또한, 복수성이나 루프성을 가 지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정체성을 잃고 융합적이고 다중적인 주체성을 띄게 된 21세기 애니메이션의 '나'는 이제 '우리'라고도 부르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21세기적 인 애니메이션의 구체적인 예로서, 영화 <목소리의 형태>(2016)를 들며, 도이는 서술한다.
"<목소리의 형태>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각각의 인간이 고유한 배경을 가진다는 전제를 일단 무효화하고, 이를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 이것 역시 미시와 거시가 서로 연결되고, 그 양자가 뒤섞이는 가운데 일어나는,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하나의 태도일 것이 다. ‘우리’속에서 '당신들'이 발견되고, 그것이 새롭게 ‘우리’의 일부를 이루는 움직임이 일어 나는 것이다."2)
이번 오시야마의 <룩 백> 역시,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2016)이나 디즈니의 <겨울왕국>(2013) 등을 구체적인 예로 들며 도이가 제시한 것과 동일한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난다.
도이가 <겨울왕국>에 대해 "단독의 공주라는 ‘나’로 모든 것을 폭력적으로 회수해 가던" 과거 디즈니 작품과 달리, "최초의 더블 히로인이 된 본작은 두 개의 중심을 갖고 있다."3)라고 평가 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후지노와 쿄모토라는 더블 히로인을 중심으로 한 <룩 백>도, 서로 대 조적인 개성을 가진 그녀들은 만화라는 매개체로 서로에게 얽히고 설키며 연관된다. 후지노와 쿄모토는 각각 다른 창작적 재능과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만화를 만든다는 행위를 통해 서로 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서로의 창작 과정을 통해 자아를 확립한다. 이들의 관계는 고립된 개체로서의 '나'에서 확장된 공동체적 주체로서의 ‘우리’를 구현하며, 같이 하나의 만화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에서, 안나와 엘사가 보여주는 주체성의 융합, 즉 "우리성"을 명확히 확인 할 수 있다.
대칭적 연출을 통한 '우리적' 서사의 형상화
도이는 이러한 "우리"라 부를 수 있는 캐릭터를 "대칭적이고 교환 가능한 존재"4)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나카자와 신이치와 같은 현대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대칭성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도이에 따르면, 이 "우리적인" 세계에서는, <너의 이름은>처럼 세계나 역사가 일회성 · 단독성을 잃고 복수화 · 루프화된다고 하는데, <룩백>에서도 마찬가지로 후지노는 이 야기 후반부에서 쿄모토에게 닥치는 어느 끔찍한 사건에 대해, 가능 세계(타임 리프)적 상상력 을 불러일으키는 묘사를 추가하고 있다.
어쨌든, <룩 백>이 보여주는 이러한 "우리성"이 내포하는 21세기성은, 다른 관련 작 품들을 이 작품과 나란히 놓음으로써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도이가 21세기적인 애니메이션의 대표 사례로 꼽은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연출한 야마다 나오코가 이어서 작 업한 <리즈와 파랑새>(2018)가 있다.
이 작품 또한, 관악부에 소속된, 노조미와 미조레라는 대조적인 성격의 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이 두 사람이 동화 속 "리즈"와 "파랑새"에 은유적으로 비유되며,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동경이 반전되는 모습이 그려지는 점에서, '룩 백’과 실로 흡사하다. 그리하여 <리즈와 파랑새>도 "우리의" 이야기로 성립되고 있다.
또한, <룩 백>은 후지코 후지오의 자서전적인 작품 <만화의 길>(1970~2013)과 비교 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만화의 길>은 작가인 공작 콤비 "후지코 후지오"의, 아비코 모토오(후지코A)와 후지 모토 히로시(후의 후지코ᆞF·후지오)를 모델로 한 어린 시절 친구인 미치오와 사이노가 만화 를 통해 역시 초등학생 시절에 운명적으로 만나고, 투고 활동을 거쳐 프로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의 긴 청춘 여정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도 주요 화자(주인공)인 만화가(=아비코)가 사이 노(= 후지모토)의 재능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모습이 묘사되며, '후지노'와 '쿄모토'가 원작자의 이름 ‘후지모토’를 떠올리게 하듯이 명작 <만화의 길>은 <룩 백>의 설정과 이야기와도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다만, 역시 쇼와 시대(20세기)에 주로 그려진 후지코의 <만화의 길>와, 레이와 시대 의 <룩 백>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듯하다. <만화의 길>에서는 이야기 곳곳에서, 주인공 아비코와 사이노를 비롯한 등장하는 신진 만화가들이 모두 "만화"의 상징(만화의 신)인 데즈카 오사무를 깊이 존경하고, 동경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며 그려진다(묘사적으로도, 그들 앞에 등장하는 데즈카의 모습은 항상 빛나며, 노골적으로 신격화되어 있다). 또한, "신만화당" 을 결성하고, 새로운 아동 만화의 이상을 추구하는 아비코와 사이노를 비롯해, 테라다 히로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츠노다 지로 등, 이후 전후 일본만화사를 이끄는 거장들 이 되는 등장 캐릭터들은, 모두 대문자 "만화"라는 이념을 믿으며, 그 이념을 위해 청춘을 바친다.
그러나 <룩 백>에서는 그러한 <만화의 길>와 같은 주인공들이 내세우는 특권적이고 추상적인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지노는 회상에서 쿄모토에게 "후지노는 왜 만화를 그려?" 라는 질문을 받는다. 후지노와 쿄모토가 만화를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 많아야 상대를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의 길>에서 후지코가 데즈카 오사무에게 우상적 의미를 부여해 표현했던 대문자 "만화"의 이상(수직 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후지노와 쿄모토 사이의 대칭적이고 "평평한" 연결(수평 축)뿐이다. 여기서도 본작의 분명한 21세기성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이 더한 또 하나의 대칭성
여기서 도이가 "우리성"이라고 부르는 현대 애니메이션이 그려내는 대칭성은, <룩 백>에서도 연출적인 측면이나 화면의 여러 요소에서 엿볼 수 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물론 등장인물들이 뒤를 돌아보는(룩 백) 동작이다. 이야기의 전 반에서 쿄모토는 후지노의 만화에 동경심을 표하고, 후지노는 쿄모토가 입고 있던 빨간 조끼 의 등에 펜으로 사인을 한다. 나중에는 후지노가 쿄모토에게 "내 뒤를 보고 성장하는구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 이 관계는 <리즈와 파랑새>처럼 반전된다. 그 순간을, <룩 백>은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후지노가 뒤돌아보는 장면으로 나타낸다.
또한, 본작의 오프닝과 엔딩 컷도 중요하다. 감독 오시야마는 원작 만화에는 없는(정 확히는 영상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흥미로운 대칭적 연출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후지노가 책상에 앉아 열심히 만화를 그리는 뒷모습이 정면에서 그려진 다. 이 점에서 <룩 백>은 그 이야기의 양 끝단의 이미지도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관객은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룩백) 기본적으로는 표정을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부분적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존재한다. 그것을 위해 오시야 마 감독은 거울을 이용했다. 오프닝에서는 후지노가 향한 책상의 왼쪽에 작은 거울이 세워져 있어, 그 거울에 만화를 그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 일부가 비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편, 엔 딩에서는 작업실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후지노의 모습이 거의 같은 구도로 그려지지만,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화면 너머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어 도시의 건물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고 밤이 된다. 그리고 작업을 끝낸 후지노가 책상에서 일어 나 방의 전등을 끄고 화면 앞에 있는 문을 통해 나가려고 할 때, 그 유리창에 순간적으로 문의 빛이 반사되어 나가려는 후지노의 얼굴이 비친다. 여기서 유리창이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다. 즉, 이 장면에서도 대칭적인 이미지와 후지노의 얼굴과 등이라는 또 하나의 대칭성을 표 현하고 있다.이 이와 같이, 애니메이션화된 <룩 백>은 애니메이션으로만 가능한 여러 표현을 추가하며, 현대 애니메이션의 핵심에 다가간다.
창작과 상실의 역설적 관계로서의 LOOK BACK
후지노와 쿄모토는 단순히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작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고통과 상실을 동반하는 복합적인 개념임을 깨닫는다. 특히 후지노가 쿄모토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상실을 겪은 뒤, 그 상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주장한 '취약성'을 통해 주체가 타자와 연대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주체가 취약해질 때, 그 취약성으로 인해 연대가 형성된다고 본 버틀러의 주장처럼, 후지노는 쿄모토의 상실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무력함을 자각하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욱 강한 연대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연대는 단순히 창작의 동력을 얻는 것 을 넘어, 주체가 타자와의 취약성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고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 여준다.
원작 만화의 첫 페이지와 작품의 제목,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단어를 이으면 나오는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닌 상실을 인정 하고 받아들이는 연대적 태도를 통해 창작의 역설적 동기를 제시한다. 이는 상실을 기점으로 한 성장과 자기 성찰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창작을 통해 비극을 초월하려는 예술가의 모순된 감정이자 숭고한 행위로서의 의미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후지노는 쿄모토를 떠올리며 그 상실 과 취약함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기반으로 한 연대감을 통해 창작의 진정한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뒤돌아봄'은 단순히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 을 재구성하고 창작의 동력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애니메 이션이 단순한 상업적 서사를 초월해 자기 성찰의 의미를 탐구하는 매체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하며, <룩백>은 취약성 속에서 연대감을 형성해가는 주체성을 통해 창작과 상실의 관계 를 다층적 관점에서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창작적 자의식과 예술성 주체성의 변화를 반영하는 <룩 백>의 의의
후지노와 쿄모토의 관계는 창작의 자의식과 예술적 주체성을 드러낸다. <룩 백>은 창 작자의 내적 갈등과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비극 속에서 창작의 동력을 새롭게 발굴하려는 예술적 자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상실로 찾아온 고통을 넘어 창작의 진정한 이유와 그 가치를 발견하며, 뒤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창작과 삶의 의미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명의 예술가가 자기 성찰의 과정을 거치는 서사를 넘어, 상실을 극복하며 창작을 지속하려는 창작자의 의지를 드러내며 현대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문화적,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현대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상업적 서사를 초월해 자기 성찰의 의미를 탐구하는 매체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하며, <룩 백>은 창작과 상실의 관계를 다층적 관점 에서 성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등을 돌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다시 등을 돌려 그것을 마주한 누 군가에게 보여주는 것. <룩 백>은 그 마주함이 만들어낼 가능성을, '자신'은 볼 수 없지만 내 뒤에 있는 '누군가'는 볼 수 있는, 우리의 일상적 시야에서 결여된 그 뒷모습을 담아낸 <룩 백>은 창작과 예술적 자의식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예술의 존재 의미와 창작자의 위치를 재 고하게 한다.이는 현대 애니메이션이 지닌 중요한 문화적 공간이자, 창작의 동력과 예술적 자의식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으로서, 21세기 애니메이션의 주요한 흐름을 대변하는 작품이라 고 할 수 있다.
1) 후지모토 타츠키, 17-21, 학산문화사, 2023, 작가 후기
2)土居伸彰, 21世紀のアニメーションがわかる本, 2017, p. 33.
3) 土居伸彰, 21世紀のアニメーションがわかる本 , p. 116~117.
4) 土居伸彰, 21世紀のアニメーションがわかる本, p. 32.
5) 원작 만화에서는 후지노의 책상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다.
6) 오시야마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거울이나 다양한 물체에 피사체가 비치는 표현을 아주 중요 하게 그려내려 했다.”고 말했다. 응원의 마음을 발신하기, <룩백>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 이우빈, 2024.10.17, http://m.cine21.com/news/view/?mag_id=106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