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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빌론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개봉일: 2022년 12월 23일
〈바빌론〉 리뷰 – 화려함 속에 숨은 헐리우드의 잔혹사
헐리우드의 빛과 그림자
〈바빌론〉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부터 천천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은 단순히 1920년대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그리고 그 예술이 인간의 욕망과 권력, 성공의 욕심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소모되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작품이다.
〈바빌론〉은 화려함과 혼돈이 공존하던 시절, 사운드 영화가 처음 도입되던 산업적 격변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그린다. 감독은 그 과정을 통해, 예술이 기술과 시장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한다. 단순히 옛 헐리우드의 부패나 광기를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즉, 이 영화는 한 시대의 화려한 스크린 뒤에 숨겨진 잔혹한 인간 군상을 해부하는 예술적 기록이자, 예술과 산업의 충돌을 다룬 철학적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리뷰의 관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현란하고 풍요로우며, 청각적으로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는 부패한 시스템 속에서 꿈을 좇다 소멸해가는 인간들의 절규가 묻어 있다.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가 연기한 인물들은 각각 영화 산업의 다른 얼굴을 대표한다. 하나는 쇠락해가는 고전 스타의 초상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통해 정상에 오르려는 신흥 세대의 상징이다. 그들의 삶은 서로 교차하면서, 명성과 예술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드러낸다.
이 〈바빌론〉 리뷰에서는 바로 그 지점. 즉, 찬란한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꿈의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잔혹하고 허무한 구조 위에 세워졌는가—에 주목한다. 또한 감독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 “예술은 타락할 수 있는가? 아니면 타락 속에서도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한다. 이 질문은 단지 1920년대 헐리우드의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영화 산업, 나아가 콘텐츠 산업 전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의 화려한 영화계와 셀러브리티 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예술과 인간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바빌론〉이라는 작품이며, 이 리뷰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거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화려함 속의 혼돈과 탐욕
리뷰의 첫 번째 초점은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한 혼돈’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관객을 압도적인 감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1920년대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파티 장면은 단순한 도입부가 아니라, 당시 영화 산업이 지닌 열광과 광기를 압축한 상징적 장면으로 기능한다. 수백 명의 인물들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움직이며, 술과 음악, 춤, 그리고 쾌락이 뒤엉킨 혼돈의 장면은 거의 환각적이다. 카메라는 쉼 없이 움직이며, 관객이 그 열기 속으로 직접 빨려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제공한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영화 산업이 가진 화려함의 이면에 내재된 부패와 탐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장식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풍자다.
이처럼 〈바빌론〉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인간 군상의 욕망을 집단적으로 드러내는 심리극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영화라는 꿈을 좇지만, 그 꿈은 현실의 욕망과 타협하는 순간 허상으로 변한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잭 콘래드’는 이러한 모순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전 헐리우드 영화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스타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운드 영화의 등장은 그에게는 새로운 예술의 진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잊히는 공포로 다가온다. 잭의 몰락은 한 인간의 비극이자,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대체해버리는 산업 구조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변화는 늘 진보를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장면들은 과거 헐리우드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의 콘텐츠 산업에서도 기술 혁신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시스템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고 있다. 인공지능, 스트리밍,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변화는, 당시의 사운드 혁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러한 반복적 역사를 예술의 순환 구조로 제시한다. 화려함과 몰락, 혁신과 소멸은 언제나 공존하며, 예술은 그 양극단을 동시에 품는다.
〈바빌론〉의 시각적 연출은 이러한 주제를 더욱 강화한다. 황금빛 조명 아래서 펼쳐지는 무도회의 장면은 처음엔 찬란하게 느껴지지만, 점점 그 내부의 공허함이 드러난다. 카메라는 화려한 세트를 비추는 동시에, 무표정한 엑스트라들의 얼굴을 포착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이처럼 외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피로를 병치시키는 방식은 ‘화려함 속의 잔혹사’라는 〈바빌론〉 리뷰의 핵심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헐리우드는 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영화 속의 찬란한 파티는 성공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파멸의 전조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성공의 열기에 도취되지만, 그 열기가 식은 뒤 남는 것은 공허와 상실뿐이다.
결국 이 장면들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바빌론〉이 묘사하는 화려함은 단지 시각적 미학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산업적 구조가 만들어낸 일시적 환상이다. 그 환상은 관객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그 속에 감춰진 잔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감독은 이 화려한 혼돈을 통해, 예술과 인간의 욕망이 충돌할 때 어떤 비극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바빌론〉 리뷰가 강조하듯, 화려함은 헐리우드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파멸의 서막이 되는 이중적 존재다.
예술의 순수성과 타락의 경계
두 번째 초점은 ‘예술의 순수성과 타락의 경계’이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 캐릭터는 그 경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 재능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선택한다. 관객은 그녀의 몰락을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산업이 예술가를 소비하고 버리는 시스템의 본질을 드러내는 서사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과정을 통해 예술이 상업적 성공에 종속되는 순간, 그 본래의 순수함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매니가 극장에서 과거의 필름들을 바라보는 장면은 예술이 시간과 세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있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장면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감독의 철학적 성찰로 읽힌다. 즉, 〈바빌론〉은 타락과 혼돈의 서사를 통해 오히려 예술의 영속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점에서 〈바빌론〉 리뷰는 단순히 스토리 요약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하나의 비평적 접근이 된다.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영화는 순수한 예술인가, 아니면 산업의 산물인가?”
〈바빌론〉의 의미와 헐리우드의 거울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핵심은, 영화가 헐리우드의 ‘영광의 역사’를 찬양하는 동시에 그 ‘타락의 본질’을 폭로한다는 점이다. 데이미언 셔젤은 과거의 황금기를 재현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아름답기만 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파티의 소음, 카메라 뒤의 혼란, 배우들의 절망—all of this는 영화 산업의 본질적인 모순을 상징한다.
결국 〈바빌론〉은 ‘예술은 아름답지만, 예술가의 삶은 잔혹하다’는 명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영화의 화려함은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희생을 드러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는 단지 192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다.
요약하자면, 〈바빌론〉은 화려한 헐리우드의 이면에 숨은 욕망과 몰락, 그리고 예술의 생명력에 대한 탐구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이상을 비추는 거울임을 증명한다. 따라서 〈바빌론〉은 한 시대의 비극을 넘어, ‘예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묻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는다.